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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현(金玉鉉)

작성자 최고관리자 등록일 2015-12-29 23:11:44 조회수 432회 댓글수 0건

이름

김옥현(金玉鉉)

파명

삼현파 후손

관직

시대

조선

정보


김옥현(金玉鉉)

김옥현은 조선조(朝鮮朝)의 정조(正朝) 5년(1781)에 세환(世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문민공 김일손(文愍公 金馹孫)의 후손으로 본관은 김해(金海)인데, 정조(正祖) 21년(1797) 5월에 그의 아버지가 살인 혐의로 체포되어 서산감옥에 투옥되었다.이때 옥현은 16세의 소년으로 아버지를 따라 서산에 와서 정성으로 아버지를 돌보며 그 옆을 떠나지 않았다.또한 그는 시간 있을 때마다 아버지의 억울함을 애원하니 잔인한 옥리(獄吏)도 그의 효심에 감동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안 옥현은, 다시 관찰사(觀察使)에게 혈서(血書)로서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역시 여의치 않음을 알고 최후의 수단으로 서울에 올라가 호소하기로 결심했다.
서울에 올라온 옥현은 금호문(金虎門) 밖에서 엎드려 있다가 대신들이 출입할 때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아무런 보람 없이 이미 두 달이 지나고 있었다. 이 때 많은 사람들이 강 밖으로 쫓겨났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사경(死境)에서 헤매고 있었다.
이에 옥현은 장소를 바꾸어 혜정교(惠政橋)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 동짓날(冬至日)에 임금께서 대가를 타고 행차한다는 소리를 듣고 엎드려 있다 웃옷을 벗고 쇠를 두들기며 호소를 하였다.옥현의 이 같은 호소에 임금이 감동되어 마침내 옥현의 아버지는 왕명으로 사형(死刑)에서 감형(減刑)되어 3년 간의 서울 근교(近郊)로 유배(流配)토록 하였다.
유배지로 따라간 옥현은 아버지 뒷바라지로 어느덧 3년을 맞이한 어느 봄날, 나라에 경사가 있음을 듣고 바쁜 걸음으로 서울에 올라왔다.
서울에 올라온 옥현은 특사(特赦)로 부친이 출옥됨을 알고 너무 기뻐서 단숨으로 아버지의 유배지에 달려가 알렸다.
그러나 옥현은 그동안의 누적된 고생으로 마침내 득병(得病)하여 자리에 눕더니 드디어 정조(正祖) 24년(1800) 4월 4일에 아버지의 유배지에서 19세의 독신으로 일생을 마치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시신(屍身)을 부석면 가사리에 운구하여 안장(安葬)시켰다. 이같이 아들의 극진한 효성으로 출옥하여 고향에 돌아왔으나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그 심경 누가 알 수 있었으리요.
그 후 조선조(朝鮮朝)의 순조(純祖) 8년(1808)에 암행어사(暗行御史)가 호남지방(湖南地方)을 채방(採訪)할 때, 이곳에 들려 옥현의 행적을 알고 이를 가상히 여겨 상주(上奏)하니 곧 정려(旌閭)가 내려졌다.
즉 동년 8월 9일에 터를 잡고 상량(上樑)하여 9월 27일에 현액(懸額)하니 현재 태안읍 동문리 대림아파트 앞에 서있는 것이 바로 옥현의 효도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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