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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항(金宇杭)

작성자 최고관리자 등록일 2015-12-30 06:02:02 조회수 477회 댓글수 0건

이름

김우항(金宇杭)

갑봉(甲峰)

파명

경파 후손 충정공파

제중(濟仲)

관직

우의정

시대

조선

정보


조선의 문신, 자(字)는 제중(濟仲), 호(號)는 갑봉(甲峰)·좌은(坐隱), 청송 부사(靑松府使) 홍경(洪慶)의 아들. 1669년(현종10) 사마시(司馬試)에 합격, 1675년(숙종 1) 동지들과 상소하여 송시열(宋時烈)을 구하려다가 실패, 1681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을과(乙科)로 급제,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가 전적(典籍)을 거쳐, 사간원(司諫院)·사헌부(司憲府)·예조(禮曹)·병조(兵曹)의 벼슬을 역임했다. 1689년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사직한 뒤 일찍이 이상(李翔)을 논구(論救)한 일로 해서 철산(鐵山)에 유배, 곧 풀려 나왔다.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로 다시 기용되어 시강원 사서(侍講院司書)가 되었고, 회양 부사(淮陽府使)·전라도 관찰사를 지내면서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1703년 도승지(都承旨), 이어 예조·이조의 참판(參判)을 거쳐 대사헌·경기도 관찰사, 1706년 형조 판서, 뒤에 병조 판서·좌참찬(左參贊)을 지내고 1713년(숙종39) 우의정이 되었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서 1722년(경종 2) 신임사화(辛壬士禍)로 노론(老論) 4대신이 화를 입자 이를 항소(抗疏)했고, 김일경(金一鏡)의 사친 추존론(私親追尊論)을 극력 반대했다. 시호는 충정(忠靖).

1649년(인조 27년)~1723년(경종 3년) 자는 제중(濟仲),호는 갑봉(甲峰),또는 좌은(坐隱), 김우항(金宇杭)은 청송부사 김홍경(金洪慶)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고려조의 유명한 공신 금녕군의 14세 손으로 21세 때인 1669년(현종 10년)사마시에 급제하였다.

1675년 예송문제로 귀양가게 된 우암 송시열을 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1681년 명경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당쟁이 극심했던 숙종조에 벼슬을 하였으나 당파싸움에 휩싸인 일이 없었고, 1689년에 홍문록(弘文錄),도당록(都堂錄)에 올랐다.

그러다가 장희빈의 아들을 왕세자로 책봉하려는 숙종에 반대한 송시열 등 서인들이 대거 숙청된 이른바 기사환국(己巳還國) 때 억울하게 피해를 입게된 이상(李翔)을 구하려다 도리어 철산(鐵山)으로 유배되었다.

이와 같이 성격이 외유내강하여 매우 곧고 확실하며, 의(義)를 보면 목숨을 걸고 직간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그 후 유배에서 풀려나 1694년 갑술옥사(甲戌獄事) 이후 홍문관 수찬.교리.집의 등 내직을 지냈고 외직으로는 1695년 경상도 관찰사, 1696년에는 회양부사(淮陽府使), 1697년에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후 다시 승지(承旨)에 임명되었다.

이 후 대사간, 대사성,예조참판,경기도관찰사를 거쳐 1707년 한성부 판윤(判尹)이 되었다. 1708년 형조, 병조, 이조의 판서를 지내고, 1710년 호조판서로 임명되어 북한구관당상(북漢句管堂上) 을 겸임하면서 산성(山城)을 쌓고 궁궐을 축조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713년 판의금부사를 거쳐 우의정에 제수되었으며 1721년 영중추부사 에 올랐다.

그가 출세하기 전에 휘릉별검을 지낸 일이 있었는데 당시 휘릉참봉 권씨는 너무 가난해서 50세가 넘도록 장가를 못든 노총각이 있었다고한다.

하루는 권참봉이 능 경내에서 나무를 하는 나무꾼을 잡아 데리고 왔는데, 이를 본 그는, 그 나무꾼이 빈곤한 살림에 70세의 노모를 모시고 여동생까지 부양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몰래 나무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무꾼을 풀어주고 권참봉과 나무꾼의 누이동생을 결혼까지 시켜주었다.

그 후 권참봉은 두 아들을 낳아 둘 다 진사시에 급제하는 영광을 얻었다. 어느날 김우항이 감사가 되어 권참봉댁에 들렀더니,권참봉의 늙은 장모가 후원에다 칠성단을 차려놓고 '갑봉어른 정승 되소서' 하며 간절히 빌고 있더라는 일화가 있다.

그는 또한 청백리로도 이름이 높았으니 가정형편이 매우 궁핍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 5형제와 딸 셋을 두었는데 맏딸이 혼기가 되어 정혼을 하였으나 혼수 마련이 어려울만큼 청빈한 생활을 하여 세인들의 존경과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경종 3년(1723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니, 조정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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