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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金建)

작성자 최고관리자 등록일 2015-12-28 23:36:14 조회수 1,236회 댓글수 0건

이름

김건(金建)

성천(醒川)

파명

자완(子完)

관직

시대

정보


김건(金建)

선생의 휘는 건 (建)이요, 자는 자완(子完)이며 호는 성천(醒川)이라 절효 김극일 (節孝 金 克一)선생의 큰 아들로서 사람을 가르치고 몸을 닦는데 정성을 다 하였고 우애가 순독하고 곁 받을 만한 말과 착한 행신을 다 하드니 약관 20세에 사직(司直)으로 추천을 받아 문과께 오르고 군수의 직을 맡아 시민여상(親民如傷)이라는 좌우명을 벽에 걸어 두고 사랑을 근본삼아 형벌을 피하니 백성들이 선량해 지며 사람마다 칭송하여 절효선생 (節孝先生)의 효행을 본 받았다 하였다. 뒤에 참판(參判)을 증하였다. (참고문헌 :김해 김씨 세적, 도주지, 도주문화)

 


공의 휘(諱)는 건(建)이오. 자(字)는 자완(子完)이오. 호(號)는 성천(惺川)이니 절효선생의 장자(長子)이다. 일찍부터 가정교훈이 엄격하야 불검외사(不檢外事)하고, 강구소학(講究小學) 일서(一書)하야 이교인수신지방(以敎人修身之方)으로 위업(爲業)하며, 형제육인(兄弟六人)이 우애 독실해서, 항상 자리를 같이호되, 이가언선행(以嘉言善行)으로 법을 세우고 문장과 학업으로 성품을 바로잡으니, 숙세영명(淑世榮名)이 곳곳에 퍼져 성예가 크게드러나다. 공이 약관(弱冠)에 문과에 올라 배영광군수(排靈光郡守)하니, 성품이 관후하야, 이시민여상(以視民如傷) 四字로 벽에 붙이고, 백성을 사랑하고 형벌을 베풀지 아니하니 정화대행(政化大行)하다. 교민예속(敎民禮俗)에 이 삼물권지(以三物勸之)하고, 도인의방(導人義方)에 이구사훈지(以九思訓之)하니, 사람들이 위지효행가도측(謂之孝行家귀則)이러라. 마침내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올새 동료들이 육흡주에 무병한 뜻으로써 만류하나, 공이 도연명의 환고향을 읊으며 간소한 옷차림으로 고향에 돌아가 여생을 즐기다. 헌종2년 임인(壬寅)에 백동사(白洞祠)에 향사하니라. 배(配)는 정부인(貞夫人) 달성서씨(達城徐氏)니 이조참판 형수(亨秀)의 女오, 墓는 나복산 선영下 간좌(艮坐)에 합폄이다.

郡守公壇碑文(군수공단비문)
공의 휘는 建이오 자는 子直이요 호는 斗溪니 김해인이라. 수로왕에 계출하여 고려 판도판서 管으로 중조를 삼다. 고조 휘는 문숙이오, 증조 항은 호가 돈웅이미 판관이요, 조부 서는 현감이요, 부친 극일은 절효선생이니, 효성이 지극하야 동물들까지 감화되었다. 모친 숙인 이씨는 한성판윤 간의 따님이니 병술년 2월3일에 공을 낳았고 형제 6인중에 공이 장남이라. 세종임금때 생원에서 문과에 올라 부정자를 거쳐 사직에 오르고 영광군수에 배하니 백성을 교화해서 거의 형벌이 없었다. 을해년에 가선에 올라 예참 동지 의금부사를 역임하고 광주부윤을 배했다. 임오년에 친환을 인해서 돌아와 봉양하더니, 경자년 정월 10일에 75세 일기로 세상을 마치니 나복산 선영에 안장했다. 배위는 숙인 달성서씨니 호참 형수의 따님이라. 부덕이 심히 아름다웠고, 정해년에 나서 계사년에 별세하니 묘소는 합폄했다. 아들 4형제를 두었으니 태석은 음으로 사정이요, 예석은 문정언이요, 우너석은 부사이오, 강석은 진사라. 손자 증손이하는 번성하고, 또한 명석이 많더라. 때에 연산주가 포악하여 공의 조카 문민공 일손에 문장과 지조가 드높더니, 마참내 참혹하게 필화를 입어 한집안 친척이 다 귀향가도 증손 대유가 겨우 자취를 숨겨 피신했다. 그러나 원기가 크게 꺾여 현신이 다 죽으니 이 어찌 김씨 한빚의 불행뿐이랴. 공의 산소가 분명히 선영에 있으나 문민공의 부인 우씨의묘가 가까이 있어 서로 분별하기 어려우므로 일찍이 단을 모아 향사하되, 공의묘소는 버려두었으니, 이 어찌 공의 영령이 슬퍼하지 아니할까 이제 공의 가심이 3백년이라 종손 종경이 또한 단을 모으고 해마다 제향을 올리니 이제는 원을 풀었도다. 하루는 주현에게 좁고를 보이며 글을 청하거늘, 늙고 병들어 정신이 삭막하여 공의 덕행을 손상할까 두려워 굳이 사양한데 종경이 이것은 사실대로 적은 것이요 창작이 아니니 사영치 말라. 이에 그 족보를 살펴보니 감회가 깊도다. 김씨에 변성할제 문장의 영원과 아름다운 덕행을 따를 이 없더니 한번 환란을 치름에 능히 산소를 지키지 못했으되 다행히 어진 자손을 두어 향사를 받들게 되니 돌고 도는 운수에 일정치 못한 일이 과연 이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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