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김인갑(金仁甲) | 호 | 오재(梧齋) |
파명 |
| 자 | 춘유(春逾) |
관직 | 시대 | 조선 | |
정보 | 임진왜란 충신·공신 |
김인갑(金仁甲)
자는 춘유(春逾)요 호는 오재(梧齋)이시며 주부9主簿) 진손(震孫)의 7세손이시다.
성격이 지효지충(至孝至忠)하시어 정간(丁艱)에 3년 여묘하시니 그 마을을 금소동(金巢洞)이라 하였으며 선조때 무과급제 하시어 강계군수. 철산부사를 지내셨고 신묘년에 훈련판관이 되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므로 아우 의갑(義甲)과 더불어 호남에서 창의하시어 왜적을 크게 무찌르셨다. 공은 평소에 뛰어넘는 법을 익히시어 그 법이 신(神)과 같으셨다. 진주싸움에 위급함을 들으시고 진주로 급히 가시니 성을 왜적이 몇겹으로 둘러쌓여서 들어갈 수 없었다. 이에 공은 나는 새처럼 뛰어넘어 성중에 뛰어 드시니 병사 최경회(崔慶會)가 장재쾌재(壯哉快哉)라 하였다.
아우 의갑은 화살에 맞아 순절하시고 공(公) 역시 성이 함락되자 강에 몸을 던지시어 순절하시니 조정에서 선무원종공신에 녹하고 정려(旌閭)를 명하였다.(횡성군 후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