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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金 琢)

작성자 최고관리자 등록일 2015-12-30 06:58:23 조회수 686회 댓글수 0건

이름

김   탁(金   琢)

신암(愼庵)

파명

문경(文敬)공파

여화(汝華)

관직

문하시중(門下侍中)

시대

고려

정보

김세장(金世章)의 장남


주석지신(柱石之臣) 김탁(金琢)  

김탁(金琢)은 고려 28대 충혜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정당문학(내사문하성에 소속된 종2품), 문하시랑,대제학을 역임하면서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등과 교류하며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일으키는데 크게 공을 세웠으며, 국가 변란시에는 무관으로 활약하여 공신의 반열에 섰으니, 실로 문무를 겸비한 일세의 경세가였다.

자는 여화(汝華),호는 신암(愼庵)이며 병부상서 김세장(金世章)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공민왕 때 최유(崔濡)가 조적의 난을 진압하는데 약간의 공을 세웠다하여 발호하다가 왕의 미움을 사서 원으로 도망쳤다. 최유는 원나라에서 고려의 역신 기철(奇轍) 일당과 결탁하여 군사 1만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어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을 옹립하려는 쿠데타를 자행했다. 이 때 김탁은 최영(崔瑩)과 함께 최유 일당의 군사를 괴멸 시켰다. 이로 인해 일등공신이 되고 왕은 주석신(柱石臣)이라 칭했다. 문하시중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으나 세상에는 청백리로 그 이름이 높았다. 그러나 고려의 국운이 기울고 이성계 일파의 세력이 점차 커가는 것을 보고 나주(羅州)로 은퇴하니 조정에서 여러번 불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후진들의 교육에 여생을 바쳤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그가 노니던 산을 시랑산(侍郞山), 그가 살던 마을을 시랑동이라 한다.

시호를 문경(文敬)이라 하니 그의 후손들이 그를 입중조로 하여 나중에 문경공파 큰 문중을 형성하엿다. 증손 김수연(金壽延)은 효성이 지극하고 경사(經史)에 박통했다. 세종 16년(1434), 무과에 급제하니, 세종이 친히 어필로 득충신효자지문(得忠臣孝子之門)이라고 쓴 홍패를 하사하고 부사직(副司直)을 제수했다. 그후 충주, 제주목사를 거쳐 문종때는 판중추부사 겸 오위도총관이 되었으며,충효청직으로 왕이 1백간의 집을 하사하셨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여 단종이 유배소인 영월에서 비참하게 승하하자 6일간의 단식 끝에 자결했다. 조정에서는 견관치제(遣官致祭)하고 병조판서를 추증하여 그의 높은 충효정신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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