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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金大建)

작성자 최고관리자 등록일 2015-12-29 16:48:02 조회수 805회 댓글수 0건

이름

김대건(金大建)

파명

관직

시대

조선

정보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金大建)

1821년(순조 21) ~ 1846년(헌종 12년) 아명(兒名)은 재복(再福), 자는 지식(芝植). 최초의 한국인 천주교 신부인 김대건(金大建)은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마을에서 태어나 어려서 천주교에 입문했으나 집안이 계속 박해를 받자 6세 때 용인 골배마실(경기도 용인) 로 이주 하였다. 어려서는 재복(再福)이라 했으며 족보명은 지식(芝植)으로 안경공파이다.

세례명은 앙드레이며 아버지 제준(濟俊)도 천주교 신자로 1839년 기해사옥 때 순교하였다. 김대건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서양 문물을 접한 최초의 유학생으로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과 철학을 공부 하였다. 그는 지혜와 총명이 탁월하여 3개국의 외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했으며, 한강가 새남터에서 순교할 때가 24세였으니 참으로 짧고 굵은 인생을 살다간 초인적인 생애였다. 그 짧은 생애에 그의 활동은 문자 그대로 종횡무진이었다. 15세 때 신부 모방(Maubant)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택되어 최양업, 최방제와 같이 1836년 부터 1842년 까지 중국 마카오에서 성직자 교육을 받았다. 그후 중국, 만주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펴면서 귀국 노력을 한 끝에 1845년 입국 하였다. 중국에서 조선의 입국을 노리던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 페레올(Ferreol) 주교를 영입하기 위해 다시 상해(上海)로 가서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신부로 서품받았다. 이어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Davuly)신부와 함께 귀국하여 조선교구 부감목(副監牧)으로 서울의 입정동(笠井洞)에 자리잡고 교세확장에 진력했다.

1846년 조선교구로 파송되는 외국인 성직자의 비밀입국로를 개척하라는 페레올주교의 명을 받고 현석문(玄錫文) 등의 도움으로 황해도 장산곶 앞 바다에서 중국선과 연락을 취하고 돌아오던 중 순위도(巡威島)에서 체포 되었다. 서울로 압송되어 투옥 중 1839년 기해박해 때 피살된 프랑스인 주교와 신부 3명에 대한 명목으로 무력통상을 전개한 프랑스 동양함대에 자극을 받은 정부는 김대건을 사학도(邪學徒)로 단정하여 새남터(서울 노량진)에서 효수하였다.

1984년에 시성(諡聖)되었고 유해는 카톨릭대학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1925년에 그와 같이 병오박해(丙午迫害) 때 순교한 9명을 포함하여 79위도 복자(福者)로 시복(諡福)되었다.

김대건은 보기 드물게 효자였다. 그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 곁을 떠났다가 9년만에 고국의 땅을 밟았다. 그는 40번이나 갖은 악형을 받고도 태연하게 뛰어난 설득과 능변으로 관장의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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