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김맹(金孟) | 호 | |
파명 | 삼현파 집의공 맹파 | 자 | 자진(子進) |
관직 | 시대 | 조선 | |
정보 | 조선 전기의 문신 |
김맹(金孟) 1410(태종 10)~1483(성종 14)
본관은 김해. 자는 자진(子進). 아버지는 극일(克一)이며, 어머니는 한성부윤 이간(李간)의 딸이다. 생원시를 거쳐, 1441년 (세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감찰·김천도찰방·예조좌랑이 되었다. 1451년 (문종 1)평안도도사를 거쳐 고령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1455(세조 1)좌랑으로서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3등에 책록되고 곧 의금부진무를 거쳐 오위도총부경력을 역임하였다. 성종 초에 집의에 올랐다가 퇴직하였다. 성품이 단아, 청렴하고 명리에 초연하였으며, 부자가 모두 문명을 떨쳤다.
[참고문헌] 文宗實錄, 端宗實錄, 世祖實錄, 成宗實錄, 國朝人物考, 國朝榜目
김씨 삼주(金氏三珠)
극일(克一)의 아들 맹(孟:집의공파)은 세종(世宗) 때 문과(文科)에 올라 집의(執義)를 지냈으며, 밤에 용마(龍馬)의 꿈을 꾸고 세 아들을 낳아 준손(駿孫)·기손(驥孫)·일손(馹孫)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이들 3형제가 모두 빼어나서 <김씨삼주(金氏三珠)>로 일컬어졌다.
성종(成宗) 13년 임인(壬寅)년(1482년),
謁聖科(알성과) 甲乙에 맏이 동창공(김준손:駿孫)은 둘쨰 매헌공(김기손:驥孫)과 함께 나아가서(공부:共赴) 중일백이장원(仲一伯二壯元) 상명(上命)으로 형제차제(兄弟次第) 갑을(甲乙:1/2위)로 定하시니 일가향(一家鄕)의 경영(慶榮)일뿐 아니라 실로 일국(一國)의 광화(光華)라 하셨다.(맏이와 둘째는 과거시험에 1,2위로 등극함)
이때 탁영공(김일손:馹孫) 나이 19세라 이번 시험(今番試: 알성과)에 반드시 장원을 할 것이나 두 형에게 양보하고
그후 成宗 병오(丙午)년(1486년), 영공(김일손:馹孫)은 정시문과(庭試文科)에 3년 연속 수석 장원(연괴장원:連魁壯元)하셨다.
이때 백씨동창공(伯氏東窓公) 김준손(金駿孫)은 홍문관교리(弘文館校理)이고, 중씨매헌공(仲氏梅軒公) 김기손(金驥孫)은 사조좌랑(史曹佐郞)이요, 계씨탁영공(季氏濯纓公) 김일손(金馹孫)은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이시니 형제 3인이 청선(淸選:맑고 가림)재직하여 세상 사람들(世人)이 이들 형제를 가리켜 말하기를 김씨 삼주(金氏三珠)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