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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金釣)

작성자 최고관리자 등록일 2015-12-30 06:47:09 조회수 428회 댓글수 1건

이름

김조(金釣)

졸재(拙齋)

파명

사군파(공간공파)

자화(子和)

관직

시대

조선

정보

천문과학자


과학문명에 있어서 서양은 동양보다 훨씬 앞섰다고 생각되나, 그 서양보다 2세기나 앞서 측우기를 만들고 천문대, 물시계 등을 제작하여 과학 한국을 빛낸 사람이 장영실(蔣英實)이다. 그런데 그 장영실을 지휘감독하며 그와 함께 한국 천문학 연구에 새 장을 연 세종 때의 명신 김빈(金殯)을 아는 이는 적다. 빈은 초명이고 잘 알려진 김조는 세종으로부터 받은 사명(賜名)이다. 김조는 감무공 익경(監務公 益卿)의 손자 진문(振門)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글을 좋아했으며, 특히 역산(歷算)에 정통하였다. 서기 1411년(태종 11년)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인동현감, 집현전 직제학을 역임하고 예조판서에 이르렀다.

1438년 세종20년 집현전 직제학으로 제수되어 장영실과 함께 천문대를 만들고 물시계를 창안하였다. 성품이 청렴 고매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상에는 묘역에서 여막을 짓고 3년동안 시묘했으며, 충성심이 뛰어났다. 세종 24년 정인지(정麟趾), 신개(申槪) 등과 함께 [고려사] 편찬에 참여했으니 천문학과 과학기술 외에 유학에도 뛰어난 학자였다. 조선 성종 연간 재가(再嫁) 금지의 논의가 있을때 '유약한 과부일 경우에 재혼을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한 김자정(金自貞)은 바로 그의 아들이다. 김자정은 단종 계유년(1453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장령, 집의를 거쳐 예조참의에 올랐다가 동지중추부사, 공조판서를 지냈으니, 부자(父子)가 모두 오늘날의 장관인 판서를 역임했다. 성종 때 강희맹(姜希孟), 양성지(梁誠之)등과 함께 [여지승람(輿地勝覽)]을 편찬하였으며, 사신으로 두 차례나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와 같이 김조와 김자정 부자는 고답적인 학자가 아니었다. 김조는 실제로 세종의 과학기술정책의 입안자로서 천체의 운행과 현상을 관측하는 간의대의 건축과 물이 흐르는 것을 이용하여 스스로 시간을 쳐서 알리도록 한 물시계(자격루) 등 전문적 과학기술을 가지고 기계 제작에도 참여했다. 김자정 또한 지리서인 [여지승람]을 편찬하고 의지할 곳 없는 유약한 과부의 재가(再嫁)를 허용하자고 주장하였으니, 당시로서는 실로 진취적이고 사회개혁에 뜻을 둔 사상가가 아니고서는 어려운 주장이라 하겠다. 김조와 김자정 부자는 실용적인 사고와 진보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보급에 큰 공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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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은 21-01-08 23:59 답변 삭제

    김진문 할아버지도 인물정보에 넣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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