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김구(金龜) | 호 | 금산(琴山)또는 희우(希禹), |
파명 | 자 | 영인(靈人) | |
관직 | 시대 | 조선 | |
정보 |
김구(金龜)
김해인 자(字)는 영인(靈人) 또는 희우(希禹), 호(號)를 금산(琴山)이가 하니 가락국(駕洛國)의 태조(太祖) 김수로왕(金首露王)의 후예(後裔)이다. 그는 세종(世宗) 8년(1426년)에 별시위(別侍衛) 김이형(金利亨)의 아들로 용인(龍仁)에서 태어났다.
그는 단종(端宗) 1년(1453년) 중사마(中司馬), 이듬해 문과(文科)에 등제(登第)하여 벼술길에 나서니 장악서(掌樂暑)의 전악(典樂)이 되었다.
뒤이어 한림(翰林)을 거쳐 사헌부(司憲府)지평(持平) 공조정랑(工曺正郞) 초계군수(草溪郡守) 평안(平安)강원(江原) 전라(全羅)등 삼도(三道)의 도사(都事)와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參贊)을 역임(歷任)하고 종부사첨정(宗簿寺僉正)겸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을 지내다가 성종(成宗) 16년 91485년) 헌능(獻陵)의 전사관(典祀官)을 마지막으로 그해 11월 세상(世上)을 버리니 향년(享年)은 60세였다.
현재 창원군(의창군)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에 묘(墓)가 있다.
< 국조 문과 방목>
세조(世祖)12년(1466년), 춘시(春試) 2(2)
부(父) 일운:김희우(一云:金希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