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김두(金두) | 호 | 퇴신재(退愼齋) |
파명 | 자 | 맹진(孟振) | |
관직 | 시대 | 고려 | |
정보 |
김두(1338-1400)는 하리면 율곡리 큰밤실 태생으로, 자는 맹진(孟振), 호는 퇴신재(退愼齋), 본관은 김해, 전(鈿)의 맏아들, 포은 정몽주의 제자이다. 공민왕 때 무사선발시험에 합격해 왜구들을 물리친 공으로, 수문전 학사(學士)를 특별히 임명받았다.
그러나 이성계가 득세하자, 공양왕 때 큰밤실에 숨어서 두문불출하였다. 그 후 이성계가 김두의 재능을 깊이 알고 여러 차례 자기의 휘하에 들어올 것을 청하였으나 끝까지 듣지 않고 한탄하여 이르기를, "집이나 국가의 운세를 구걸하여 사느니보다 죽는 것이 나으리라"라고 하늘에 맹세하면서 큰밤실에 불을 질러 뛰어들어 타계하였다.
무덤은 큰밤실 북쪽에 있는데 잃어버렸고, 보문면 미호리 미울의 표절사(表節祠)에 제향되었다. 이상의 사실이 <조선환여승람(1929)>, <예천군지(1939)>등에 실려 있다. 김두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으로 죽음으로써 고려에 충성을 다하였다.